발효식품 안 미생물이 하는 일과 몸에 좋은 효과
발효식품의 맛과 향, 영양은 우연이 아닌 미생물의 치밀한 생화학적 활동에서 비롯됩니다. 발효란 미생물이 식품 속
유기물을 분해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를 이용해 식품을 저장하고 풍미를 강화해 왔습니다.
한국의 김치, 된장, 청국장, 일본의 미소, 유럽의 치즈와 와인 등은 발효 미생물의 활동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발효 과정에는 주로 유산균, 곰팡이, 효모, 세균 등 다양한 미생물이 관여합니다.
발효 과정에서의 미생물 역할: 자연이 빚어낸 화학 실험실
예를 들어, 김치 발효에서는 초기 단계에 류코노스톡 메센테로이데스가 활발히 증식하여 유기산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합니다.
이로 인해 김치의 아삭한 식감과 상큼한 맛이 형성되고, 동시에 유해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중·후기에는 락토바실러스 플란타럼이 우세해져 산도를 안정화시키고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을 만들어 김치의 영양 가치를 높입니다.
된장과 간장에서는 아스퍼질러스 오리제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전분을 단당류로 분해해 깊은 감칠맛을 형성하며,
청국장에서는 바실러스 서브틸리스가 나토키나제를 생성해 혈전 용해 작용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미생물의 역할은 단순히 ‘맛을 좋게 하는 조연’이 아니라, 발효 과정 전반을 지휘하는 ‘주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발효는 온도, 습도, 염도 등 환경 조건에 따라 미생물 군집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그 결과 최종 제품의 풍미와 영양 성분이
결정됩니다. 따라서 발효식품 제조 과정에서 미생물의 종류와 활동을 이해하는 것은 품질과 안전성 확보의 핵심입니다.
발효 미생물이 만드는 영양 변화: 원재료를 슈퍼푸드로
발효 미생물의 가장 놀라운 기능은 원재료의 영양적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점입니다. 콩, 채소, 곡물 등 원재료 속에 존재하던 영양소가 발효 과정에서 더 잘 흡수되는 형태로 변하거나, 아예 발효를 통해 새로운 생리활성 물질이 생성됩니다.
예를 들어 콩 속의 단백질은 소화 효소에 의해 완전히 분해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바실러스 속 균류가 생산하는 프로테아제(단백질 분해 효소)는 이를 아미노산까지 분해해 체내 흡수를 크게 높입니다.
이때 생성되는 글루탐산은 강한 감칠맛을 주어 식욕을 돋우는 동시에, 신경전달물질로서 뇌 기능에도 도움을 줍니다.
김치 속 유산균은 식이섬유를 발효시켜 단쇄지방산(SCFA)을 생성합니다. SCFA는 대장 점막 세포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장 건강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대사질환 위험을 낮추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또한 발효 과정에서 비타민 B군, 비타민 K, 폴리페놀 등의 항산화 성분이 증가하며, 이들은 체내에서 활성산소를 제거해 노화와 각종 만성질환 예방에 기여합니다.
특히 ,청국장 속 나토키나제는 발효 과정에서만 생성되는 특수 효소로, 혈액 속 응고된 섬유소(피브린)를 분해해 혈전 형성을
억제합니다. 이로 인해 청국장은 심혈관 질환 예방에 좋은 발효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된장 속의 이소플라본 유도체,
김치 속의 글루코시놀레이트 분해 산물 등도 발효를 통해 항암 효과를 강화하는 물질로 변환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발효가 단순 저장 기술을 넘어 ‘원재료를 기능성 식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발효 미생물과 건강 효과: 장을 넘어서 전신으로
발효 미생물의 건강 효과는 단순히 장 기능 개선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먼저, 발효 유산균과 바실러스 속 균은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로 작용하여 장내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을 맞춥니다. 장내 미생물 균형이 좋아지면 면역계의 과도한 염증 반응이
억제되고, 알레르기나 자가면역 질환 위험도 낮아집니다.
더 나아가 발효 미생물과 그 대사산물은 장-뇌 축(gut-brain axis)을 통해 뇌 건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김치 속
락토바실러스 브레비스가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을 생성해 스트레스 완화와 수면 질 개선에 기여한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발효식품 속 폴리페놀 대사산물은 뇌세포 산화 손상을 줄여 치매 예방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면역력 강화 측면에서도 발효 미생물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베타글루칸, 펩티도글리칸 등은 선천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높입니다. 청국장의 바실러스 속 균은 장 점막에서 면역글로불린 A(IgA) 분비를
촉진해 병원체 침입을 차단합니다. 또한 발효 미생물이 생성하는 항균 펩타이드는 장내 유해균뿐 아니라 구강, 피부의 병원균 억제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발효 미생물의 역할은 “입에서 시작해 장과 전신으로 확장되는 건강 네트워크”라 할 수 있습니다. 발효식품을 꾸준히 섭취하면 단기적으로는 소화·배변 개선, 장 건강 증진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심혈관·대사질환·신경계 질환 예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과거 조상들이 ‘된장국을 매일 먹어야 오래 산다’, ‘김치를 먹으면 병이 덜 난다’고 전하던 지혜는, 현대 미생물학과 영양학이 과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