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과학

한국 전통 발효 식품 속 미생물의 비밀

땅무니25 2025. 8. 14. 21:36

 

발효의 본질과 미생물의 역할

발효식품 속 미생물은 단순한 부패를 막는 역할을 넘어서, 맛·향·영양을 모두 변화시키는 주역이라 할 수 있다.

 

발효식품 속 미생물은 부패를 막는 것은 물론 건강 효능도 가지고 있다.
식품 속 다양한 미생물 이미지

 

한국 전통 발효 식품 속 미생물

 

한국 전통 발효식품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환경과 사람의 손길 속에서 발전해 왔다. 김치, 된장, 청국장, 막걸리와 같은 대표

발효식품들은 단순히 맛과 향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미생물과의 공생이 만들어낸 살아있는 식품이라 할 수 있다.

발효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다. 이들은 주로 세균, 곰팡이, 효모로 구분되며, 각기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자라면서 발효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예를 들어 김치의 발효는 주로 젖산균(Lactic acid bacteria)이 주도하며,

이 균은 배추와 무에 포함된 당분을 분해해 젖산을 생성한다. 젖산은 김치 특유의 새콤한 맛을 내는 동시에 유해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부 효과를 가진다. 된장과 간장 발효에는 주로 아스퍼질러스 오리제(Aspergillus oryzae)와 같은 곰팡이균이 관여해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고, 전통 장맛의 깊이를 만든다. 또 청국장에는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가 다량 존재하여 끈적한 점질물과 고소한 향을 형성한다. 

 

한국 전통 발효식품의 미생물 다양성

 

한국 전통 발효식품 속 미생물은 놀라울 만큼 다양하다. 예를 들어 김치 한 종만 하더라도 발효 초기에는 류코노스톡(Leuconostoc), 중기에는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후기에는 위스코니아(Weissella) 등 서로 다른 미생물이 차례로

우세종으로 자리잡는다. 이 과정은 계절, 온도, 재료의 신선도에 따라 달라지며, 그 변화가 곧 김치 맛의 차이를 만든다.

 

된장과 간장은 장기 숙성되는 만큼 미생물의 서식 구조가 훨씬 복잡하다. 곰팡이균이 전분과 단백질을 분해하면, 그 결과물로 생긴 당과 아미노산을 세균과 효모가 다시 활용하는 ‘연쇄적 발효’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글루탐산과 같은 감칠맛 성분이 생성되고,

특유의 향과 색이 완성된다. 청국장은 발효 기간이 짧지만, 높은 온도(40~45℃)에서 바실러스균이 폭발적으로 증식하며 특유의

강한 향과 점질물을 만든다. 막걸리는 효모와 젖산균이 공존하는 독특한 발효 환경으로, 알코올과 유기산, 풍부한 향기 성분이

동시에 형성된다. 이러한 미생물 군집의 다양성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기술을 활용해 미생물 구성과 그 역할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건강 효능

전통 발효식품 속 미생물은 단순히 맛을 내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건강 효능을 발휘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장 건강 개선이다.

김치와 청국장에 풍부한 유산균과 바실러스균은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유익균 비율을 높여 소화 흡수를 돕는다.

일부 미생물은 항암 성분을 생성하거나, 체내 염증 반응을 완화하는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도 있다. 예를 들어 청국장 속 바실러스균이 생산하는 나토키나제(Nattokinase)는 혈전 용해 작용을 하여 혈액순환 개선에 도움을 준다. 된장과 간장에 함유된 발효 대사산물은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 세포 손상을 방지하고 노화를 늦추는 데 기여한다. 김치 유산균은 면역세포의 활성도를 높이고, 일부는 피부 건강과 아토피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되었다. 또한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비타민 B군, 유기산, 아미노산은 영양 보충에 도움을 준다. 최근에는 발효식품의 미생물을 활용해 기능성 건강식품이나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이처럼 전통 발효식품 속 미생물은 음식의 부가가치를 넘어, 인체 건강에 직접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영양소 공장이라 할 수 있다.

 

과학과 전통의 융합, 그리고 미래

과거에는 발효식품 제조가 경험과 감에 의존했지만, 현대에는 미생물학·분자생물학·식품공학 기술이 접목되면서 발효의 원리가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통 발효식품의 미생물 구조를 유전자 수준에서 규명하면,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거나 특정 기능성을 강화하는 맞춤형 발효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특정 유산균 종을 선택적으로 배양해 김치의 유익균 함량을 극대화하거나, 바실러스균의 효소 활성을 조절해 청국장의 향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국내 소비자뿐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에도 큰 경쟁력이 된다.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단과 전통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K-Fermentation’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발효식품이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는 스마트팜·IoT 기술을 활용해 발효 환경을 정밀 제어하거나, 미생물 배양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발효식품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동시에, 전통 방식이 가진 고유한 풍미와 문화적 가치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과학적 표준화와 전통의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발효문화의 미래가, 바로 ‘한국 전통 발효식품 속 미생물의 비밀’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길이 될 것이다.